너의 이름은 (君の名は。, your name)

너의 이름은.
감독 신카이 마코토
출연 카미키 류노스케, 카미시라이시 모네
개봉 2016 일본



일본의 수도 도쿄에 사는 소년 '타키'와
한적한 시골 이토모리에 사는 소녀 '미츠하'.
아무런 연관성 없는 두 사람은 언젠가부터
서로의 몸이 바뀌는 꿈같은 시간을 보낸다. 
차츰 서로에 대한 이해를 더해가지만
이런 신비한 간헐적 체험도 갑자기 끝나고,
두 사람의 연결 고리를 찾고자 떠난 타키는
점점 놀라운 시간과 인연의 비밀을 마주하는데...
타키와 미츠하, 두 주인공은 과연 어떤 결말을 맞이할까?
두 사람의 인연의 끈은 어떤 매듭을 지을까?



<너의 이름은.> 메인 예고편
네이버 영화




예전에는 종종 시청하던 애니메이션을
언젠가부터 잘 보지 않았다. 
그림보다는 실사가 더 낫다고 여긴
고정 관념 때문이었을까. 
불현듯 눈에 띈 <너의 이름은>.
앞으로는 애니메이션도 다양하게
보아야겠다고 생각했다. 
신비한 이야기를 담은 
<너의 이름은> 속으로 떠나보자. 

도시와 시골, 
3년 전 과거와 현재,
(또는 현재와 3년 후 미래)
두 시공간이 마치 끈목처럼 엮여서
이야기의 중심축을 이끌어간다. 

'시간' 이야기는 언제나 매혹적이다. 
여기에 '혜성'이라는, 태곳적부터 지금까지 
인류와 함께 한 소재는 영화의 신비감을 더해 준다. 
영화에서 혜성의 주기는 1,200년이라고 나온다. 
왠지 선사시대에도 하늘의 별들을 바라보며,
비록 정형화된 언어로는 표현되지 않았을지라도,
나를 감싼 시간과 공간이라는 거대하고 막연한 개념을
살며시 느껴보았을 옛사람들의 시선과 감탄이 눈에 선한 듯 하다.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는
마치 바구니 속의 사과들처럼
따로 떨어져 있는 것이 아니라
혜성의 꼬리처럼 하나로 길게 이어진
'한 몸'은 아닐른지. 
현재를 바로 알기 위해서는
지나간 과거를 직시해야 하며
현재를 충실하고 올바르게 보낼 때
다가올 미래를 아름답게 꿈꿀 수 있지 않을까.
이것이 우리가 역사를 배우는 이유이자
지금 이 순간을 잘 살아야 하는 까닭이다. 
물론 스스로 행복하기 위해서도 말이다.



몸이 바뀐다, 혹은 마음이 바뀐다. 
몸은 그대로인데 마음이 변한 것일까,
마음은 그대로인데 몸이 변한 것일까.
영화에서는 마음이 주(主)가 되어
원래의 '내 것'이 아닌 '다른 몸'에 
놀라며 낯선 환경에 좌충우돌하는
모습을 재미있게 그려 낸다. 
몸을 인식하는 주체는
마음이기 때문일까. 



남자인 타키와 여자인 미츠하는
서로의 생활을 지키기 위해 
각자의 이름을 비롯하여
그날의 일정을 기록한다. 
다른 사람의 인생을 사는 꿈,
잘 만들어진 꿈. 어쩌면 우리는
지금도 어떤 꿈 속에서 살고 있지는 않을까.



시공을 가르는 두 사람 사이의 신비한 인연의 끈은
멀리멀리 돌아왔지만 결국 두 사람의 운명적인 만남으로
그 매듭을 짓게 된다. 우주의 무한한 인드라망 속에서
각자에게 연결된 인연의 고리는 어디로부터 시작되어서
어디에서 끝을 맺을까? 과연 시작과 끝이란 있을까?



시간의 흐름, 실과 사람을 잇는 것,
자연과 인간, 신과 인간을 잇는 것.
뒤틀리고, 얽히고, 때로는 돌아오고, 멈춰서고, 
또 이어지는 것. 영화에서 여러 사람들로부터 언급된 단어, 
무스비 むすび[結び] 는 매듭, (끝)맺음, 결말이라는 뜻이라고 한다.

10대에 시작된 옛 인연을 이어서
8년이라는 시간의 간격을 두고
20대에 다시 만나 새 인연을 맺었다. 
두 사람의 몸은 비록 멀리 떨어졌으나
변하지 않는 마음으로 인연의 끈을 놓지 않았다. 
사람들에게는 보이지 않는 마음의 실로 이어서
만능을 잇도록 한 그 무언가는 과연 무엇일까.



타키에게는 과거와 현재가,
미츠하에게는 현재와 미래가,
마치 열쇠와 자물쇠처럼 맞물린다. 
타키는 미츠하에게 소중한 사람들의 삶을 새롭게 열어주도록,
미츠하는 타키가 그 역할을 제대로 이루어낼 수 있도록 이끈다. 
두 사람은 보이지 않는 기나긴 인연의 끈으로 단단히 연결되어 있다. 

드라마 <도깨비> OST, <Who are you>에는 이런 가사가 있다. 


"내가 꼭 찾아낼게
 내가 널 알아볼게
 내가 꼭 기억할게
 내가 널 바라볼게"

 


드라마 <성균관 스캔들> OST, <찾았다>에는 이런 가사가 있다.

         
"솔직히 처음엔 몰랐어
 우연한 만남 있었지만
 (중략)
 찾았다
 내 곁에 둘 한 사람"




타키와 미츠하가
10대와 20대에 느꼈을 마음을
잘 대변하는 가사인 것 같아서
한번 가져와 보았다.

황혼(たそがれ, 誰そ彼·黄昏),
낮도 밤도 아닌 시간으로
세계의 윤곽이 희미해지고
이 세상 사람이 아닌 것과
만날지도 모르는 시간.
언젠가 타키와 미츠하가
시공을 뛰어넘어 만날 것이라는
암시로 볼 수 있을 것 같다.




이토모리 마을에서
타키와 미츠하가 황혼을 배경으로
만나는 장소에서, 문득 울릉도 나리 분지가 떠올랐다.
작년 겨울, 2박 3일 일정으로 다녀온 울릉도 및 독도
탐방 속 느낀 감정들이 스크린 속에서 다시 피어났다.
아름다운 동해의 풍경을 다시 볼 수 있기를.

나리 분지를 생각나게 한 성지(聖地)로 가는 길,
이 세상과 저 세상을 가르는 물길을 보며
레테 강이 연상되었다. 망자가 이승에서
저승으로 갈 때 레테의 강물을 마시면
과거의 기억을 모두 지워 번뇌를
벗어난다고 한다. 떠난 자와
남은 자 모두를 위해서다.
얼마 전 큰 인기리에 방영된
드라마 <도깨비>에 나온
저승사자의 찻물은
혹시 이 망각의 강에서
길어 오지 않았을까.




미츠하의 가문에는
대대로 내려오는 전통, 특성이 있다.
어쩌면 유전(遺傳)이란 단순히 신체적인 요소의
발현으로만 머무는 것이 아니라, 그 이상의 무언가를
내포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다만 언제, 어떤 형태로
나타날지 모른 뿐, 마치 보인자(保因者)처럼.

타키와 미츠하가 다른 시간과 장소에서
함께 흘린 눈물의 의미는 무엇이었을까.
바로 두 사람이 간절하게 찾고자 했던 것,
서로의 삶이 바뀌곤 했던 이유와 두 사람을 이어 준
신비로운 인연의 끈을 무의식적으로 감지했기 때문일까.
서로의 존재에 대한 감사와 이해의 마음이 솟아났기 때문일까.




어떤 누군가에게는 황홀한 행운, 꿈결 같은 경치가
다른 누군가에게는 황폐한 불행, 악몽 같은 재앙이
될 수도 있음을 생각해 본다. 서로 다른 입장에서는
같은 사건도 얼마든지 판이하게 인식될 수 있으니까.



















'너'와 '나', '나'와 '너'가 어떻게 이어졌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다만 너로 인해 나의 삶이 더 풍요로워졌고,
또 나로 인해 너의 운명이 바뀌었다. 
그 반대도 마찬가지. 
서로가 서로를 향한 존재의 이유였으며
서로를 위한 구원이자 행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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