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남태평양의 평화로운 섬 모투누이에서
부족장의 딸로 태어나 바다에 대한 동경을
품으며 당차고 아름답게 성장하는 '모아이'.
모든 것은 순조로웠으나 섬을 둘러싼 환경이
변하면서 삶의 위기가 닥쳐오고, 할머니로부터
태초의 전설과 관련 있는 자신의 역할을 전해듣게 된
모아이는 대담하게 드넓은 바다로 운명의 모험을 떠나는데...
과연 모아이는 전설 속의 영웅을 만나 신과 바다의 운명을
원래대로 돌려놓을 수 있을까? 바다가 선택한 소녀의 항해가 시작된다.
<모아나> 메인 예고편
네이버 영화
2017년 1월,
극장가에는 두 편의 애니메이션이
흥행가도를 달리며 큰 화제를 불러왔고
한 달여가 지난 지금도 꾸준한 인기를 모으고 있다.
국내외에서 호평을 받은 두 작품을 한번 살펴보자.
지난 포스팅 <너의 이름은>에 이어 이번에는 <모아나>다.
사람마다 생각이 다르겠지만
이야기의 중심엔 사랑이 있었다.
마우이가 테 피티의 심장을 훔친 것도,
모아나가 망망대해의 바다로 떠난 것도,
사람에 대한 사랑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 사랑은 동물과 자연을 넘어 자신의
본질은 잃은 반신과 여신에게까지
영향을 미치고 극적인 변화를
이끌어 내는 신화를 만든다.

테카와의 목숨을 건 대면에서 모아나는 깨닫는다.
살벌한 용암의 괴물 테카가 바로
심장을 잃은 생명의 여신 테 피티였다.
선과 악은 별개가 아니었다. 이를 알기 전에는
테카가 반드시 무찔러야 하는 악이었으나
이를 알고 난 뒤에는 자신의 참다운 본질을 잃은
불쌍한 여신이었으며 다시 본연의 모습으로
돌아가야 할 길 잃은 양이었다.
무시무시한 겉모습에 가려진 참된 속마음을
바라볼 수 있는 지혜의 눈을 가져야 하며
이 혜안은 사랑을 바탕으로 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영영 헛된 사투의 늪에 빠져
궁극적인 해결책을 찾지 못할 수 있다.
전통을 지키고 이어나가는 것은 중요하다.
하지만 전통(傳統)과 안주(安住)의 경계가 모호해질 때,
현실은 희미해지고 미래는 불투명해진다.
결국 모투누이 섬을 구한 것은
스스로 한계를 정해 그 테두리 안에서만 생활하는
'얕은 전통'이 아니라 두려움을 이겨 내고 삶이 경계를 넘은
'깊은 전통'이었다. 기억의 저편, 어두운 동굴 속에 잠들어 있던
'심장의 울림'이 모아나의 행동을 만들고 변화를 이끌어 냈다.
희망을 밝히고 모든 것을 올바르게 바로잡았다.
안락한 생활을 뒤로 하고 드넓은 바다로 떠나면서
스스로 삶을 개척해나가는 운명의 주도자가 되었다.
선대(先代)의 업적 덕분에 새로운 세계가 열리고
또 다른 이야기가 펼쳐졌다.
전통의 뿌리를 제대로 알자.

모아나의 할머니인 탈라가 그랬던 것처럼
그녀의 손녀 역시 바다의 선택을 받는 운명을 맞이한다.
특정 능력 또는 삶이 대를 건너서 유전되는 상황은
<너의 이름은>에서도 볼 수 있다.
그럼, 운명이란 것은 이미 정해진,
확고부동한 철옹성일까.
인간의 자유 의지나
선택권은 없는 걸까.

르네상스 시대의 사상가 마키아벨리가 쓴 <군주론>에는
운명에 대한 언급이 있다. 요컨대 운명은 절대적이지 않고
가변적이며 또한 운명은 여성이므로 인간이 과감하게 행동할 때
새로운 변화와 가능성을 이끌어낼 수 있다는 것이다.
그 어떤 어려움이 우리들 앞을 가로막더라도
우리는 이 모든 것을 이겨 내고 나아갈 것이다.




스티브 잡스는 2005년 6월 12일, 스탠포드대학교 졸업식 연설에서
'점을 연결하라(Connecting the Dots).'라는 유명한 말을 남겼다.

모든 선택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고 한다.
비록 지금 당장은 그 모든 것을 온전히 이해하지 못할지라도,
나를 믿고, 그대를 믿고, 대담하게 앞으로 나아가자.
물길이 열리고 바람이 뒤따르며 별빛이 이끌 것이다.
수평선 너머 희망의 새 시대로.



다른 것에 신경 쓰지 말고
자신이 하고 싶은 것,
가슴이 시키는 일을
찾아 실천하자.


가슴이 시키는 대로,
가슴은 나의 성향과 의지를 나타내는 근원이자
나를 꿈의 세계, 미지의 세계로 이끄는 원동력이다.
어쩌면 시시때때로 마음속에서 울려 퍼지는 목소리는
우리 본연의 역할과 길을 안내하는 운명의 속삭임일지도 모른다.


사실, 인간의 운명이란 미리 정해져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하지만 아무것도 없는 완벽한 '무(無)'라고 여기지도 않는다.
우리가 어떤 생각을 갖고 어떤 행동을 하면 그 속에는 이미
특정한 미래의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것이 이루어질지, 아닐지, 또는 어떻게 바뀔지는
아무도 모른다. 가봐야 안다. 그래서 도전이
중요한 것은 아닐까. 일단 시작하자.
우리의 이야기는 계속될 것이다.

영화를 이끌어가는 주인공들은
다 함께 합심하여 새로운 희망을 발견한다.
서로가 서로에게 없어서는 안될 꼭 필요한 존재로서
모아나는 마우이가 있었기에, 그리고
마우이는 모아나가 있었기에 대업을 이룰 수 있었다.
하물며 흐리멍덩한 닭 '헤이헤이'도 결정적 순간에,
(물론 의도했든, 의도하지 않았든) 희망이 돌이
바다에 빠질 뻔한 위기를 태연히 막아내지 않았던가.

모아나와 함께 이야기를 이끌어 가는 변신의 귀재,
마우이는 부모로부터 버려졌으나 신에 의해 키워진
반신반인(反神半人, demigod)으로 나온다.

그리스 신화의 영웅 헤라클레스,
트로이 전쟁의 영웅 아킬레우스도 반신반인이다.
영웅이란 출신의 한계를 극복할 때에만
진정한 별로 거듭날 수 있는 것인가.
'비정상'으로 치부된 출생의 아픔은
눈부신 업적으로 인해 '정상'을 뛰어넘어
'신'의 경지에 다다르게 하는 디딤돌이 된다.
이 영화의 주인공은 폴리네시아인이다.
'많은 섬들'이라는 뜻인 폴리네시아(Polynesia)는
오세아니아 동쪽 해역에 분포하는 수천 개 섬들을 총칭하는 말이다.
북부의 하와이 제도와 중부의 쿡·라인 제도,
서부의 엘리스·통가·사모아·토켈라우·피닉스 제도,
남서단의 뉴질랜드, 그리고 남동부의 투부아이·소시에테·투아모투·
이스터섬·살라이고메스 및 마르키즈 제도로 구분된다.
육지 면적은 작지만 섬들이 분포하는 해역은 태평양의 절반을 차지한다.
폴리네시아 인들은
아득한 선사시대부터 특별한 장비 없이
아시아로부터 출발, 카누를 타고 인도네시아와
오스트레일리아, 뉴기니는 물론 피지, 사모아, 통가 등
태평양 일대의 수많은 섬들을 발견하고 삶의 터전으로 일구었다.
문신을 뜻하는 '타투(tattoo)'는
폴리네시아어로 '때리다'라는 의미의 'ta'와
'표시, 기록하다'라는 의미의 'tatau'에서 유래한다.
초자연적인 힘, '마나'를 믿었던 폴리네시아 인들은
자신의 영적인 능력을 타투로 표현했다고 한다.
모투누이 섬 주민(특히 모아나 할머니 탈라)과
마우이에게서 잘 나타난다.
| 모아나와 폴리네시아에 대한 궁금증 - ize |
화사한 프린세스 계열의 애니메이션도 좋지만
<모아나>처럼 전세계의 여러 가지 풍경과 문화를 담은
이야기도 참 매력적인 것 같다. 일각에서는 단순히 겉모습만
차용한다는 목소리도 있지만 평소에 자주 접하기 어려운 주제를
친근하게 다듬어서 사람들에게 재미있게 전달하고 지적, 감정적인
자극을 줄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나름 상당한 의의가 있지 않을까.
'네이버 영화'에서 <모아나>를 검색하면 장르가
애니메이션, 모험, 코미디, 가족, 판타지, 뮤지컬로 나타난다.
마치 종합선물세트처럼 웃음과 감동, 희망과 재미를 선사한다.
이런 종류의 애니메이션이 취향에 잘 맞는 것 같다.
앞으로도 다양한 주제를 담은 다양한 이야기들을
다양한 매체를 통해 지속적으로 만날 수 있기를~

눈부시게 아름다운 남태평양의 매력적인 풍경과
때론 감미롭고, 때론 역동적인 OST가 참 인상적인 영화였다.
나도 언젠가 한번은 꿈같은 경치를 눈으로 보고 피부로 느낄 수 있는
순간을 맞이할 날이 오지 않을까? 그날을 기약하며 알로하(aloha)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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